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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장수네 친정도 어제 논 하나 모내기를 마쳤습니다.
뭐...논이 많은건 아니구요...이제 쫌더 큰 논만 심으면 되네요.
어릴적 제 눈에 비친 모내기 하는 날은 새로운 놀이를 하는 날 쯤으로 생각했던거 같아요 ^^
양쪽 논두렁에 서서 구령을 맞춰가며 못줄을 잡던 어르신들과 박자를 맞추듯 논에 모를 콕~콕~ 심어대던 손 놀림들...
저는 그 못줄을 꼭 잡아보고 싶었네요.
모를 심는 모든 손들이 그 못줄을 따라 움직이니까요. <사진출처 : 연합뉴스>
그때 당시에 '못줄은 아무나 못 잡는 거구나...'라며 당연시 했던거 같아요.
못줄을 떼셨던 분들은 동네에서 젤로 어르신들 이셨거든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못줄 잡는데에도 경로우대 사상이 베어 있었던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죠? ^^
사실 물속에서 움직이기 힘들잖아요.
발까지 푹~푹~ 빠지는데...
허리를 숙여 모(벼)를 심는 것도 힘들구요.
그래서!! 못줄은 어르신들에 대한 배려 였는지도...^^
사진속에서 처럼, 지금 심어놓은 모(벼) 들은 너무 나약해(?) 보여요.
모든 걸 손으로 하던 시절 모는 정말 푸르르고 컸었는데...
모내기 철이 되면 씨나락(종자로 쓸 벼)이 아랫목을 차지하곤 했었는데...
논에 발아된 볍씨를 뿌리고, 얇은 못자리용 대나무를 양쪽에 꽂아서 비닐을 씌워 두면...
잘 자란 벼가 어른 손 한뼘이나 됨직한 크기가 되면 모(벼)를 쪘었어요.
그때 당시 모(벼)를 찐다고 얘길 했었는데...빽빽하게 마구잡이로 자란 모(벼)가 한뼘 정도나 될 정도로 자랐을때 모(벼)를 줄 맞춰 심기위해 뽑는 작업을 말합니다.
길다란 검정 스타킹을 신고, 발에는 어두운색 양말을 신고, 허리춤엔 볏짚을 잘 다듬어서 차고....
지금은 롱~~ 장화를 신지만, 그런 장화가 없었던 그때 당시엔 거머리가 살갗을 파고 드는걸 막기위해 검정 스타킹을 신었었지요.
어른 손 두손으로 꽉 쥐어질 정도의 양만큼을 한 단씩, 지푸라기로 묶어 놓으면...
물이 질질질~ 흐르는 못단을 바작을 올린 지게에 져 모(벼)를 심을 논으로 나르고...
그 다음부터 아이들이 할수 있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지요.
물이 담긴 넓다란 놀이터(?)...^^
못단을 논 가장자리에 갖다 놓으면, 모(벼)를 심기 편하게 아이들이 논의 이곳저곳으로 적당한 양의 못단을 옮겨다 놓았었지요.
그러면서 아이들은 물속에서 빨리가기 시합도 하고, 엄마들의 눈을 피해 물에 살짝 앉아도 보고, 일부러 서로 밀치기도 하고, 일부러 못 단을 던지기도 하고...
상수도 시설도 되어 있지 않고, 동네 저수지에서 손빨래를 해야 했던 시절이라 빨랫감을 일부러 만들면 죽음 이었거든요~~ㅎㅎ
하...그런때가 있었지...^^*
감회가 새롭네요.
지금도 동네 앞 논에 사람들이 꽉 차 있던 광경들이 생생해요.
왼손에 모(벼)를 움켜쥐고, 오른손으로 적당량(네다섯가닥?)의 모(벼)를 떼어, 못줄에 달린 빨간 실에 맞춰 콕~콕~ 심는 그것이 그렇게 해 보고 싶던지...
헌데 유난히도 일을 못했던 소금장수...^^;
좀 성장해서 초등학교 고학년 쯤, 동생들과 함께 모를 심어도 제가 지나온 자리만 모가 둥둥~ 떠다니고...
고구마 밭을 매도 동생은 저~만치 가고...
고추를 따도, 감자를 캐도...
그럴 때마다 울 엄마 맨날 하시는 말씀,
'너는 뭘 해 먹고 살지 걱정이닷~' ㅎㅎㅎ
소금장수가 될 줄이야...^,.^*
그때 그 시절 사진기가 있었다면 기록을 남겨 뒀겠지만...
제 첫 사진이 일곱살 적이니까요...
인터넷 뒤지다가 진짜 옛날 모내기 하는 모습의 사진을 찾았는데,
링크만 걸어야 될것 같아서 링크만 걸어 봅니다 ^^
--> 60년대 모내기 사진 보기
추억을 하나하나 꺼낼 때면 젤로 행복합니다.
뭐...논이 많은건 아니구요...이제 쫌더 큰 논만 심으면 되네요.
어릴적 제 눈에 비친 모내기 하는 날은 새로운 놀이를 하는 날 쯤으로 생각했던거 같아요 ^^
양쪽 논두렁에 서서 구령을 맞춰가며 못줄을 잡던 어르신들과 박자를 맞추듯 논에 모를 콕~콕~ 심어대던 손 놀림들...
저는 그 못줄을 꼭 잡아보고 싶었네요.
모를 심는 모든 손들이 그 못줄을 따라 움직이니까요. <사진출처 : 연합뉴스>
(강릉 학산 오독떼기 모내기 시연)
그때 당시에 '못줄은 아무나 못 잡는 거구나...'라며 당연시 했던거 같아요.
못줄을 떼셨던 분들은 동네에서 젤로 어르신들 이셨거든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못줄 잡는데에도 경로우대 사상이 베어 있었던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죠? ^^
사실 물속에서 움직이기 힘들잖아요.
발까지 푹~푹~ 빠지는데...
허리를 숙여 모(벼)를 심는 것도 힘들구요.
그래서!! 못줄은 어르신들에 대한 배려 였는지도...^^
사진속에서 처럼, 지금 심어놓은 모(벼) 들은 너무 나약해(?) 보여요.
모든 걸 손으로 하던 시절 모는 정말 푸르르고 컸었는데...
모내기 철이 되면 씨나락(종자로 쓸 벼)이 아랫목을 차지하곤 했었는데...
논에 발아된 볍씨를 뿌리고, 얇은 못자리용 대나무를 양쪽에 꽂아서 비닐을 씌워 두면...
잘 자란 벼가 어른 손 한뼘이나 됨직한 크기가 되면 모(벼)를 쪘었어요.
그때 당시 모(벼)를 찐다고 얘길 했었는데...빽빽하게 마구잡이로 자란 모(벼)가 한뼘 정도나 될 정도로 자랐을때 모(벼)를 줄 맞춰 심기위해 뽑는 작업을 말합니다.
길다란 검정 스타킹을 신고, 발에는 어두운색 양말을 신고, 허리춤엔 볏짚을 잘 다듬어서 차고....
지금은 롱~~ 장화를 신지만, 그런 장화가 없었던 그때 당시엔 거머리가 살갗을 파고 드는걸 막기위해 검정 스타킹을 신었었지요.
어른 손 두손으로 꽉 쥐어질 정도의 양만큼을 한 단씩, 지푸라기로 묶어 놓으면...
물이 질질질~ 흐르는 못단을 바작을 올린 지게에 져 모(벼)를 심을 논으로 나르고...
그 다음부터 아이들이 할수 있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지요.
물이 담긴 넓다란 놀이터(?)...^^
못단을 논 가장자리에 갖다 놓으면, 모(벼)를 심기 편하게 아이들이 논의 이곳저곳으로 적당한 양의 못단을 옮겨다 놓았었지요.
그러면서 아이들은 물속에서 빨리가기 시합도 하고, 엄마들의 눈을 피해 물에 살짝 앉아도 보고, 일부러 서로 밀치기도 하고, 일부러 못 단을 던지기도 하고...
상수도 시설도 되어 있지 않고, 동네 저수지에서 손빨래를 해야 했던 시절이라 빨랫감을 일부러 만들면 죽음 이었거든요~~ㅎㅎ
하...그런때가 있었지...^^*
감회가 새롭네요.
지금도 동네 앞 논에 사람들이 꽉 차 있던 광경들이 생생해요.
왼손에 모(벼)를 움켜쥐고, 오른손으로 적당량(네다섯가닥?)의 모(벼)를 떼어, 못줄에 달린 빨간 실에 맞춰 콕~콕~ 심는 그것이 그렇게 해 보고 싶던지...
헌데 유난히도 일을 못했던 소금장수...^^;
좀 성장해서 초등학교 고학년 쯤, 동생들과 함께 모를 심어도 제가 지나온 자리만 모가 둥둥~ 떠다니고...
고구마 밭을 매도 동생은 저~만치 가고...
고추를 따도, 감자를 캐도...
그럴 때마다 울 엄마 맨날 하시는 말씀,
'너는 뭘 해 먹고 살지 걱정이닷~' ㅎㅎㅎ
소금장수가 될 줄이야...^,.^*
그때 그 시절 사진기가 있었다면 기록을 남겨 뒀겠지만...
제 첫 사진이 일곱살 적이니까요...
인터넷 뒤지다가 진짜 옛날 모내기 하는 모습의 사진을 찾았는데,
링크만 걸어야 될것 같아서 링크만 걸어 봅니다 ^^
--> 60년대 모내기 사진 보기
추억을 하나하나 꺼낼 때면 젤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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